파피오페딜륨이 필 때면/노란장미
파피오페딜륨이 울집에 들어온지 어언 5년 째가 되었다.
울집에 와서 벌써 4번째 귀여운 꽃망울을 터트렸다.
1월 말경부터 피었으니 한 달이 훨씬 넘게 피어있다.
이 꽃은 화려하지는 않고 보면 볼수록 심오한 깊은 맛이
풍겨나오는 서양란이다.
이 꽃은 흰 관을 머리에 무겁게 이고 있고 두 팔이 달린 것처럼
생긴 꽃으로 튼실하고 앙증맞은 특이한 주머니 모습의
꽃을 필 때면 5년 전으로 돌아가 이 꽃의 사연을 생각하게 만든다.
죽어가는 녀석을 주워와 싱싱하게 키워낸
생명의 은인이 된 장본인이 나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기도 한다.
양평으로 드라이브 나갔다가 어느 산사에 우연히 들렸는데
꽃 보시를 받았던 꽃이 다 시들어 죽어가는 모양이었다.
절에서는 화분속의 시들어 죽어가는 꽃은 버리고 화분만 쓰시려고
스님이 쓰레기장에서 이 녀석을 버리고 계셨다.
우연히 그 곳을 지나치다 그 모습을 보았다.
내가 볼 때 아직은 그 녀석의 생명이 붙어있어서 내가 데려가면
꼭 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살려보고싶어 그 꽃을 스님께 달라고 부탁해서 주워왔다.
그날 이 꽃은 날 만나지 않았다면 죽어서 다시는 볼 수 없었을게다.
그날 집에 데려와서 빈 화분에 정성스레 곱게 심어서 물을 주고
영양제도 주고 아침에 눈 뜨면 늘 꽃들과의 대화를 나누던터라
날마다 죽지말고 살아만달라고 맘속으로 기원하면서
일조량도 적당히 주면서 물은 싫어할 거 같아 자주 주지않으면서
맘속으로 꼭 살아달라고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다.
시름시름 앓던 녀석이 날이 갈수록 파릇파릇 점점 생기를
찾아갈 때의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늘 자식처럼 사랑으로 감싸고
아픔을 달래주며 애지중지 잘 키우는 애미의 마음 같았다.
이 꽃을 보면서 삶에 희열을 느끼고 살아줘서 고맙고 내 손으로 불어가며
살려내서 한없이 뿌뜻하고 기쁘기만 했다.
꽃이 제법 뿌리를 잘 내렸는지 자리를 잡고 잘 커주니
일년내내 푸르른 잎을 볼 수 있었다.
해가 바뀌고 추운 겨울인 1월달에는 꽃봉오리를 맺은 채
추위에 웅크리면서 거의 한달을 산고로 용 쓰며 버티다가
1월 말경이면 이 녀석은 산고의 아픔도 잊은 채
앙증맞은 꽃망울을 터트려놓고 어느 새 날 보고 미소짓고 있다.
그러고나서 한 달 이상 거의 두어 달 정도 꽃을 피워
주인장한테 갖은 이쁨 토해내고 볼 적 마다 재롱을 부리다가
때가 되면 안타깝게 꽃송이가 시들어 그대로 말라간다.
마른꽃으로 한 동안 더 아름다운 자태를 지켜보다가
어느 봄날 내년에 어여쁜 꽃을 기약하며 꽃대를 싹뚝 잘라준다.
이 꽃을 지켜보노라면 느끼는 게 있어 적어본다.
사람도 이 꽃처럼 똑같이 언젠가는 아프고 병들어 죽어가겠지만
좋은 인연 만나면 좀더 오래 호강하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적 인연이 됐던 여하튼 어떤 관계의 인연이 됐든 간에
좋은 인연 만나면 생명이 연장되어 이어가고 사랑받고 살 것 이다.
'인명은 제천'이라고 죽고 사는 건 늘 하늘의 뜻인 것처럼
죽을 때가 되었다면 주워올 그 당시 죽었을 것이고
아직 죽을 때가 덜 됐으니 그때 그 시각에 그 곳을 지나가는 은인 만나
구사일생으로 구해준 좋은 인연되어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혼자 아침에 파피오페드륨 꽃을 보면 곰곰 생각하게 된다.
저도 울님들과 전생의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산우방님들 좋은 인연들 만나 화기애애하게 웃음 지으며
맑은 공기 마시며 열심히 산행할 수 있기에 행복하기만 하다.
십년전 수계받은 불자되어 늘 마음속으로나마 기도할 수 있고
영주 월은사 부처님과의 계속 이어지는 좋은 인연 맺었으니
나에게도 이런 특별한 부처님의 가피 입을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