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러시안 스님과의 인연 어젠 동짓날이라 동지기도가 있는 날 인데.... 제가 다니는 조그마한 절에 비구니 스님이 3주 전 쯤 입적하시었는데 우리 스님 49재 올리는 동안 절을 운영하고 그 이상은 문을 닫아야하는 처지랍니다. 그런데 이 절에서 제가 맡은 바 소임이 총무여서 나 몰라라 하고 뒷전에 물러서 있을 처지가 못 되어 까페생활을 잠시 접고 내가 마음 먹은대로 실천에 옮기며 돌아가신 스님을 위해 이 몸 헌신하느라 열심히 정진하며 바쁘게 절에 다니고 있어요. 자꾸 제가 종교에 미치는 이야기를 해서 타종교에 다니시는 분께 죄송하지만 저는 별 뜻은 없고 제 일상이니 그려려니 하고 널리 이해하시고 봐주세요.
어젠 우리 스님이 안 계시니 하는 수 없이 다른 스님을 초빙하여 동지법회를 열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스님 초빙하기는 좀 낫지만 초파일이나 동지기도 날에는 스님 초빙하기가 시간상 여건상 그리 쉽지가 않다. 그래도 평소 우리 스님과 인연이 깊으신 스님들께서 이런 시기에 초빙하기 어려운 날 스님 초빙을 도와주십사 부탁드려서 49재 동안이나마 마지막을 잘 꾸려가야하는 실정이랍니다. 지난 달 초닷새에 오셨던 스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갑자기 아주 급한 볼 일이 생기셔서 다른 스님을 보내신다길래 그러시라 했는데.....ㅎㅎ
아침에 오신 스님은 훤칠한 키에 파란 눈의 멋진 외모에 외국인 러시안 스님이 오셨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제가 스님을 맞이해야 하는데....???....설마....??? 다행히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 구사하셨다. 저의 짧은 영어에 놀란 자라 가슴은 콩닥거림을 느꼈지만....ㅎㅎ 한국에서 10년간 계시면서 현재 동국대 다니시는 학생 스님이신 법현스님이 오셨다. 스님 법명을 여쭤봤더니 저에게 스님증을 디미시는데 스님증이라는 걸 난생 처음 보았다. 이름은 Rustom이라 쓰여있고 법현(法現)이라 적혀있는데 말씀도 또박또박 잘 하셨다. 그래서 대충 오늘 법회에 있을 상황들을 말씀드리고 함께 법회를 가졌다.
단지 법회중 축원카드를 읽는데는 시간이 너무 걸릴 거 같아 스님은 대표로 몇 장 읽으시고 나머지는 제가 많이 읽기로 하고 법회 시작에 앞서 법현스님께서 막 엎드리어 삼배 올리시는데 이를 워짠다냐?? 기도를 시작하는데 얇은 여름천에 아뿔싸 어깨춤에 바느질이 다헤지고 옷이 다헤져서리.... 나중에 옷을 꿰매야할 거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세탁소에서도 너무 헤져서 바느질을 할 수가 없다는데.... 안타깝게도 더 이상 바느질로 꿰맬 수도 없나 보다. 법현스님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냥 입고 다나셔야 한다는 딱한 사정이다. 이를 워짠다나??....우리 절에서 시주도 많이 해드릴 수 없는 현 사정이고....휴...휴!! 생각 끝에 법현스님께 신도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정성을 모아 시주 해드리기로 했다. 학생 스님은 종단에서 기숙사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숙식은 제공 해주는데 용돈은 자체 해결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오늘처럼 법회라도 참석하시면 용돈이라도 생기시는데 자주 흔한 일은 아니지요. 법현스님은 발음도 또록또록 하시고 목탁도 잘 치시고 법회를 잘 이끌어주셨다.
금강경을 함께 읽어주시라 부탁드렸는데 중간에 끝을 내시면서 겸손하시게 오늘 염불도 잘 못한 것 같다면서 동짓죽 공양을 두그릇이나 맛있게 마치시고 학생스님이라 오후에 레포트 제출이 있으시다고 일찍 일어서시며 뒷모습을 보이셨다. 법현스님!....성불하십시요!!.....합장!!! 살다보니 흔치않은 외국인 스님도 모셔두고 법회를 했는데 공부 끝나시면 러시아로 돌아가 불법을 널리널리 펼치실 거 란다. 불교가 미지의 세계로 널리널리 펼쳐나갈 모습을 그려보며 동짓날 러시안 스님과의 이런 인연도 있었다고 저의 넋두리하며 몇자 적어보았어요. 늘 우리 회원님들 강녕하시옵고 댁내 두루두루 평안하시옵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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