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한개의 행복에 젖어/노란장미
전날 먹은 게 잘못됐는지 머리도 차갑게 아프고 가슴이 많이 아파
끙끙거리며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많이 좋아져 다행이다.
어제 함박눈이 내려 설 기분이 드는 섣달 그믐 전날이지만
우리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갈 일은 없다.
내일 차례준비를 열심히 하기로 하고 향운님이 도봉산 눈꽃산행
간다하시기에 컨디션은 안좋지만 그냥 도봉산에 핀 아름다운
하얀 눈꽃이 눈에 삼삼거려 따라 나섰다.
버스를 30여분 타고가는데 다행히 토하지는 않았지만
기필코 멀미가 나서 죽을 맛이었다.
'과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혼자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해보니 그래도 가야한단다.
산행 시작 하자마자 너무 힘들어 사진 찍어달라면서
눈밭에 그대로 뒹글며 엎드려 눈을 감고
한참을 시원하게 있으면서 혼자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도봉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진땀이 흐르지만 꾹 참고 오르니
소화제를 먹어서인지 중반부터는 좀 살 거 같았다.
산행을 하다보니 벌써 한시가 넘었단다.
점심을 안 먹을 수도 없고 오랫동안 야금야금 씹으며 천천히 먹었다.
식사후 소화제를 먹었어도 계속 신트림을 하며 하품을 하며
온종일 나를 못살게 군다.
평소엔 식탐도 있고 군것질도 잘하고 뭐든 잘 먹는데
오늘은 영 먹고싶지가 않았다.
하산하여 '맛있는 거 먹을거냐?'하시는데 먹는 게 싫어
그냥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천천히 백번씩 씹어서
조금 먹었는데 저녁에 속이 좀 편해졌는지 9시경 갑자기
임신한 여자처럼 참을 수 없이 집에 없는 빵이 먹고 싶어진다.
'아!...빵이 먹고싶어라....아!....먹고싶어라.'
요즘 잘 먹었던 꼬깔콘이라도 먹고싶은데 그것마저 없었다.
과일은 차서 싫고 마시는 건 싫고....
임신한 그때처럼 견딜 수 없다.....ㅎㅎ
그랬더니 향운님이 빵 사러 나가실 거란다.
눈 내리는 추운날 '빵 사러 가신다.'는 그 말씀만 들어도 좋았다.
눈길이 미끄러우니 빵 사러가면 안된다고 차라리
집에 있는 라면이나 끓여달랬다.
'아니 밤에 먹으면 살찌니까 그냥 잔다.'고 가시지 말랬다.
그런데도 이 밤중에 극구 나가셔서 빵을 사오셨다.
내가 달지않아 좋아하는 바게뜨빵과 모카빵을
어찌알고 사오셨는지??
혼자 바게트빵을 한참을 야금야금 뜯어먹다 향운님 좋아하는
팥빵을 한개 먹는데 왜이리 감사하고 행복할까?
오늘따라 향운님이 더 좋고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지?
아니 내가 이렇게 행복에 겨워 사는지??
나이 들수록 건강해야 할텐데 아프면 나도 겁이 왈칵 난다.
빵 한개 먹고나니 감동을 먹어서인지 또 배가 아프다.
곁에서 TV 보시다말고 배를 슬슬 문질러주신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56세 섣달 그믐 전날을 보내면서
빵 한개의 행복에 젖어 사소한 곳에서 나의 행복을 찾으며
영원한 반려자인 향운님께 감사한 마음 글로 표현해 본다.
여보!....사랑해!.....고마워여!
60년만에 다가온 의미있는 기축생 당신의 해인 섣달 그믐날
다사다난했던 기축년을 보내는
이별의 시간이 우리 곁에 서서히 다가오고 있네요.
이젠 미련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아낌없이 후회없이 보내자구요.
경인년 새해에는 우리부부 더욱 건강하고 서로 아끼며 사랑하며
온 가족 화목하며 두루두루 복 많이 받길 기원하면서.....
-기축년 음력 섣달 그믐날 새벽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