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꽃 피던 날/노란장미
장마철이 예년보다 일찍 온다더니 잔뜩 불어터진 찌뿌둥한 날씨에 습도는 높아
살갗은 끈적끈적거리고 하늘엔 허연 스모그가 잔뜩 낀 날 퇴근해 집에 가는 중이다.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린다. 이 시간엔 집에 가도 반겨주는 이 아무도 없어
오늘은 우리 동네 뒷산인 "개운산에나 가볼까?" 혼자 생각하며 길을 건너자
이심전심 마음이 통했는지.....??
어떤 여자분이 내게 다가와 조심스레 길좀 물어보신다더니
때마쳐 개운산을 알려달라고하신다.
그래서 "울 아파트 뒷산인데 제가 알려드리죠." 했다.
나는 퇴근중이라 구두를 신고있는 중이라 집에 가서
신발을 바꿔신고 따라나설려구 울 아파트로 함께 가서 매실차 한잔 드리고
둘이는 개운산을 가기로 했다.
이 여자분은 어릴 적 시골에서 누에를 많이 키워봤는데
'누에를 아홉마리를 얻어 개운산에 뽕나뭇잎을 따러간다.'하신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가 얼마되지않아 "지리를 잘 모르신다." 했다.
그리고 이 근처에 아시는 분이 딱 한분 계신다고 들었다.
우리는 함께 산에 올라 뽕나무를 찾으러 다녔다.
요즘 개운산에는 올 봄 우리 아파트쪽 입구에 화장실도 깨끗이 하나를 더 만든 터라
개방후 처음 들어가본 화장실도 구경하며 화장도 고치며 갔다.
개운산은 깨끗하고 운동시설 등등 시설물을 잘 만들어두고
개운산 둘레길과 자연학습체험장을 둘러보며 꽃사진도 담으며
집 가까이에 위치한 개운산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오늘 산행 목적이 아니라 뽕을 따야한다며 어서 가자는데
먼 발치에서 반갑게 우리 쪽을 보며 누가 아는 체를 한다.
우리가 "어서 뽕잎 따러 가야한다."는 말소리 들으며 우릴 쳐다 봤는데
딱 한분 안다는 그 분을 여기서 우연히 또 만났던 것이다.
그 분이 뽕나무 있는 곳을 알려주길래 그곳으로 갔다.
우리는 함께 뽕잎을 따며 "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그런 날인 셈이었다.
아시는 분은 바쁘다고 가시고 우리는 다른 뽕나무 있는 곳으로 찾아나섰다.
나는 뽕나무가 있는 곳에서 뽕잎을 따주다가말고 주변을 돌아보니
열흘전 쯤 누리장나무순 뜯으러 왔는데 있는 곳을 못찾아 헛탕쳤는데
내가 그리 찾았던 누리장나무순이 많이 있었다.
이 나무순 나물 먹는 법도 3년전 이 동네 어느 할머니한테 배워서 해먹어봤는데
속이 상당히 냉한 나에게는 체질음식으로 맞아 건강에 보탬이 되었다.
쓴맛이 강해 삶아서 이틀정도 우려서 나물 볶아먹거나 양념장에 쌈 싸먹어도
별미로 괜찮은 터라 봄이면 한번 쯤은 해먹고픈 나무순이었는데
오늘 마침내 반갑게 만난 것이다.
그야말로 나도 또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 된 셈이다.
어느 새 해가 기울어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이 방향의 산입구에는 내리막 길에 낮으막한 집은 오래되어 좀 허술하지만
사계절마다 이꽃저꽃이 아름답게 많이 피는 집 앞을 지나가게 된다.
오늘은 무슨 꽃이 예쁘게 피었을까 생각하며 슬며시
그집 앞을 지나가본다.
처음에 보인 다 져버린 불두화와 수국을 비교하여 얘길하는데.....우와!
저 멀리서부터 안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그 집엔
주홍빛 붉디붉은 나리꽃과 주황빛 나리꽃이 뭉쳐 큰 그릇분에
네 뭉치가 환상적으로 아릅답게 피어있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나리꽃을 본 순간 그냥 갈 수가 없어 대문이 열려있는 터라
무조건 남의 집으로 들어가 나리꽃에 연신 셧터를 눌러대본다.
밖에서 시끌벅적하니 주인 할머님이 상추를 뜯으시다말고 나오셔서
우리는" 문이 열려 무조건 들어와 죄송합니다."
"훔치러온 건 아니고 나리꽃이 너무 환상이라 들어와 사진담는다." 말씀드리니
할머님께서도 덩달아 좋아하시며 우리를 반겨주신다.
인터넷에 예쁜 나리꽃 사진 올린다하니 더 좋아하시면서
상추를 뜯어줄테니 가져가라시며 컹컹 짖어대는 개를 잡고 계시며
상추밭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
그 곳에는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 밭과 고추, 상추, 부추, 배추 등등
텃밭에는 야채가 심어있어 시골의 품에 안겨 친정어머니한테 간 그 기분으로
도심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훈훈한 인심으로 정말 행복했었다.
상추 한자루 얻어들고서 할머님께 인사를 여쭙고 돌아서는 발길에 맘속으로
" 오늘 내가 먼저 남에게 베푸니 이렇게 금방 돌려주실 수 있을까?"
저녁에 할머님이 손수 따서 싸주신 무공해 상추를 맛있게 쌈 싸먹으며
나리꽃 피던 날 정말 님도 보고 뽕도 따는 행복한 오후 한나절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니
아름다운 나리꽃 향기가 온몸으로 살포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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