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향 꽃향기 흩날릴 때면/노란장미
어제 입춘(入春)이라는 절기가 지났어도 여전히 영하의 기온을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지만 한 걸음씩 걸음마하며
봄이 내곁에 살며시 다가오기는 오는 모양이다.
우리 집에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천리향이 기지개를 켜고 드디어
어여쁜 꽃망울을 터트리고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제라늄도 피어나고, 파피오페딜륨도 주머니 닮은 특이한 모습의
꽃이 피어난다.
'서향'이라 불리기도 한 '천리향' 꽃이 우리 집에 온지
꽤 여러 해가 지났다.
달콤하고 그윽한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이송이 붙은 꽃이 향기가 너무 진하고 좋아 그 매혹적인 향기에
홀딱 반해서 6년전 꽃시장에서 구입했었다.
천리향 화분을 들여놓으니
오늘처럼 온 집안에 꽃향기가 가득했었다.
처음 천리향 화분을 샀던 그 해
우리 집에 들여와 단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 베란다 문을 열자마자 벌어진 웃지못할
천리향 해프닝 이야기다.
지금처럼 천리향 향기가 흩날릴 때면
천리향에게 억울하게 누명 씌운
미안한 마음에 혼자 미소 지으며 겸연쩍어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분명 천리향 화분을 샀을 땐 그 향기에 반해 샀기에
그 달콤한 꽃향기 맡으려
자고 일어나자마자 눈 비비며 베란다 유리문을 열고
천리향 향기를 맡으려는 순간..... 아뿔사!
전날 맡았던 향기롭던 천리향 꽃향기는 온데간데 없고 무슨
이상야릇한 썩은 냄새섞인 꽃향기에 코를 두룰 수가 없지않는가?
왜 그럴까?....무슨 일일까?....화분 흙 때문일까?
냄새를 맡아봐도 그 원인을 찾을 방도가 없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문을 열고 맡아보지만
전날 맡았던 그 향기가 나기는 나는데
처음 좋았던 그 향기가 전혀 아닌 것이다.
이렇게 강하고 지독한 향기라면 아파트에서 도저히 키울 수가
없는 상황이 판단되서 이를 어쩐담?
어제 혼자 제법 비싸게 주고 산 화분을 금방 버릴 수도 없고
지독한 향기에 질려 키울 수도 없는 정말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
일단 베란다 문을 닫고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고심을 많이 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한자성어가 딱 떨어지게 적절하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나와 쓰지않지만 김장철에 항아리 대신
유용하게 썼던 한동안 유행했던 겉은 빨간색 플라스틱이고
속은 스텐레스 재질의 김치독이었던 빨간스텐레스김치독이 있었다.
그 김치독이 비어있어 베란다에 두고 가을 김장철에 무를
그 안에 저장해 겨울에 먹을 생각에 저장해 담아두었는데
초겨울에 몇개 꺼내먹고 그만 깜빡 잊고 살았다.
저장 해두었던 그 무가 겨울에 베란다에서 얼었다가
지금 쯤 천리향 필 무렵이니 봄이 살며시 다가와 얼었던 무가 녹으니
썩어서 물이 되어 썩은 냄새를 풍겼던 모양이었는데 그 당시는
주범을 도저히 잡을 수 없음에 애매모호하게 전날 사들인
천리향한테 온갖 화살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필 그 무 썩은 냄새가 천리향과 사들인 다음 날 아침부터
동시에 풍겨져 나왔던 것이다.
그걸 모른 채 울 집에서 하룻밤 묵은 죄 밖에 없는
그 녀석에게 의심하고 온갖 죄를 덮어 씌웠으니 말이다.
도대체 이상야릇한 꽃향기를 감당할 길이 없어 어서 천리향 꽃이
지기만을 하루 이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꽃은 제법 보름 이상 한달 가까이 오랫동안 피고 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베란다 문은 꼭 닫고 밖의 유리창문은 활짝
열어두고 천리향 꽃내음은 맡지않고 유리창 너머로 꽃만 보며
며칠을 그럭저럭 살았다.
그러던 어느 봄날 아직도 그 천리향 꽃이 피어있는데 우연히
베란다 대청소를 하게 되었다.
청소를 하다가말고 아뿔사!!
현장에서 주범을 체포하고 말았다.
그 빨간 스텐레스김치독에 무 썩은 물을
그제서야 발견했었으니 말이다.
그 지독한 냄새의 주범인 김치독을 치우고서는 처음 맡았던
달콤하고 향기로운 그 천리향 향기를
지금처럼 맡아볼 수 있었다.
오늘처럼 온 집안에 달콤하고 향기로운 천리향 향기 흩날릴 때면
누명 쓰면서도 억울하다고 한마디 말 못하는 천리향에게
몹씨 미안하기도 하고 살림 잘못해 누명 씌운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하다.
천리향꽃아!....미안하다!.....누명 씌운 날 용서하려므나.
내 곁에서 달콤한 향기 흩날리면서 오래도록 함께 살며
두고두고 누명 씌운 추억 더듬으며 웃으며 살자꾸나.
오늘밤도 천리향 꽃향기 맡으며 고운 꿈나라 구경가야지.
-노란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