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리 백마고지를 다녀와서
*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북서쪽으로 약 12㎞ 지점에 있는 해발 395m의 고지로서 군사적 관례에 따라 395고지라고도 한다.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하였으므로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삼기로 정한 뒤 한국·유엔군과 북한·중공군 양측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백마고지는 중부전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철의 삼각지대(철원·김화·평강)'의 하나인 철원평야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당시 김종오(金鐘五) 소장이 지휘하는 국군 제9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제38군 예하의 제112·113·114사단의 약 4만 5000명의 병사를 동원하였으며, 아군은 제9사단 예하의 제28·29·30연대를 비롯하여 경장비 제51연대, 53전차중대, 제1포병단 등의 국군과 제5공군, 제73전차대대, 제49·제213·955 포병대대 등의 미군이 맞서 싸웠다. 제9사단이 중공군을 격퇴하고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21만 9954발의 포탄을, 중공군은 5만 5000발의 포탄을 발사한 것으로 기록된다. 중공군은 1만여 명이 사상자 또는 포로가 되었고 제38군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후방으로 물러났다. 제9사단도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 전투의 승리로 백마부대로 불리게 되었다. 유엔군은 정전회담에서 계속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전투를 기념하여 백마고지 정상에 기념관과 전적비, 호국영령 충혼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해마다 10월 16일을 전승(戰勝) 기념일로 삼아 민·관·군 합동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백마고지[白馬高地]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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