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정원 '북한산 진관사(津寬寺)'에서
*위치;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길 73
고려 현종이 진관대사를 위하여 진관사를 창건하였다. 법통을 이어받을 대랑원군(大良院君)이 왕위 계승자로 정해져 있었다. 목종에게 참소하여 숭경사(崇慶寺)에 가두고 죽일 틈을 엿보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삼각산 신혈사로 옮기도록 하였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진관이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지하굴을 파서 열두 살인 대랑원군을 숨겼으므로 왕태후가 보낸 자객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1011년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하였다.
그 뒤 진관사는 임금을 보살핀 은혜로운 곳이어서 여러 임금의 각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1099년(숙종 4)과 1110년(예종 5)에도 왕이 행차하여 참배하고 시주하였다. 조선에서는 1397년(태조 6) 태조는 이 절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여러 번 행차하여 육지와 이후부터 이 절에서는 매년 1월 또는 2월 15일에 수륙재를 열었다. 1854년(철종 5)과 1858년에 중수하였다.
1879년(고종 16)에 경운(慶雲)이 대방을 중수하였고, 1908년에는 송암(松庵)이 오층석탑을 세우고 1910년에 대웅전의 삼존상을 개금하였으며 명부전을 중수하면서 지장보살상을 개금하였다. 또한 독성전과 칠성각을 새로 지었다. 그러나 6·25전쟁 때 나한전 등 3동만을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1964년부터 최진관 비구니가 당우를 차례로 재건하여, 현재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대방(大房) 등을 갖추었으며,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이용하고 있다. 홍제루의 고색이 깃든 초석이나 축대, 대웅전 후면의 축대나 석불 등은 이 절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다. 법당 앞에는 석탑 대신 석등 2기가 있다.
출처;[Daum백과] 진관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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