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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방]

장춘단공원과 동국대를 돌아보고

by 노란장미(아이다) 2018. 2. 26.

 


 

장춘단공원(奬忠壇公園)과 동국대를 돌아보고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2동 196


*남산 동쪽 종남산 기슭 아래 조성된 공원으로, 민족의 아픔을 함께 해온 역사적인 공간이다.

현재는 남산공원의 일부에 속하며, 광장·놀이터·분수대 등의 공원시설과

석호정·장충단비석·이준열사동상·사명대사동상 등이 있다.
조선 영조 중엽 이래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어영청의 분소인 남소영이 있었고, 근처에는 남소문이 있었다.

1900년 고종은 이곳에 을미사변으로 순사한 내부대신 이경직과 연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호위 장졸들의 위패를 모신 장충단을 세웠으나, 1910년 일제에 의해 폐사되고,

민족정신 말살 정책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격하되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보제사인 박문사를 설립했다가 8·15해방 직후 즉시 철거되었다.

6·25전쟁으로 장충단 사전과 부속건물은 완전히 소실되고, 장충단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장충단공원 내에는 자유 센터, 신라 호텔, 장충체육관,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국립국악고등학교,

어린이야구장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다.

[출처; Daum 백과]


*남산의 동북쪽 기슭에 있는 장충단 공원은 조선조 영조 때 도성의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있던 자리이다.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들에 의해 경복궁에서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궁내부 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 등 많은 장병들이 일본인들을 물리치다가 죽음을 맞았다.

이에 고종 황제는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1900년 11월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짓는다.

그 자리가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이다. 이후 1908년까지 매년 춘추로 제사를 올렸다.

사당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고 사라져 버렸다. 1969년 장충단에 세워졌던 비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장충단이 공원으로 된 것은 1919년. 일제는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박문사라는 절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하였으나 광복 후 일제가 세운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다.

1984년 9월 22일 건설부고시 제374호로 근린공원이 된 장충단공원은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의 일부로 흡수, 합병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구역은 장충단공원이라는 예전의 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장충단공원 일대는 장충단비, 수표교, 승정전, 관성묘, 와룡묘 등 문화재를 비롯하여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만해 한용운 시비와 유관순, 이준열사, 김용환 선생 동상 등이 있는

항일운동과 관련된 애국충정이 깃든 민족공원이라 할 수 있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장충단비

장충단비





수표교


수표교






사명대사동상

사명대사동상

 

사명대사 동상건립문




장춘단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다담에뜰



다담에뜰




일성 이준열사 동상































3·1운동 기념비

 




 

 


김용환 선생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