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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

[스크랩] 세계 최고(最古)의 도서관과 광고가 있는 도시 에페소

by 노란장미(아이다) 2007. 3. 8.

고대 에페소 유적이 있는 뷸뷸산 언덕으로 갔다.

에페소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인 리시마쿠스에 의해 산 아래에 있던 도시를 이곳 뷸뷸산파나이산 계곡으로 옮겨와 건설하였다고 한다.

일종의 계획도시인 셈이다.

에페소로마의 통치를 받으면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바울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여러 번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요한에페소에 정착을 하여 그의 말년을 보내면서 복음서를 썼던 장소라고 한다.

에페소는 AD3세기경 고토족이 침입으로 황폐화 되었으며 그 후에는 전염병이 만연되어 도시가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난 후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최근에 도시가 발굴되면서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 장소로 각광을 받는 도시가 되었다.

 

 

 

에페소에서 행정관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했다는 오테온과 시청과 크레테스거리(시청옆에 있는 주요 거리)를 따라 이어진 하수도관(바다까지 이어졌다고 한다.)이 보인다. 에페소 도시는 행정구역(귀족이 살던 구역)과 서민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당시 귀족들이 살던 행정 구역에는 평민들이 함부로 출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평민들이 재판을 받거나 병원엘 갈 일이 있을 때만 행정구역에 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하니 이곳도 계급과 신분이 벽이 매우 높은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미티안 신전은 헤르메스카두세우스(의학의 상징으로 뱀들이 서로 꼬여있는 지팡이 모양)의 부조물로 장식된 2개의 동상 받침대가 있다. 그 오른쪽에는 가이우스멤피우스를 위해 세웠다는 멤피우스 기념비의 잔해도 남아 있다.

가이우스멤피우스는 이 도시에 수로를 만든 건축가이며 의사라고 한다.

멤피우스 기념비 맞은쪽으로는 도미티안 광장이 있는데 도미티안 광장은 로마도미티안 황제를 기념하여 만든 광장으로 이 광장 왼쪽에는 부분적으로 복구된 폴리오 분수가 있다.

헤라클레스 게이트(대리석 받침대에 새겨진 부조물을 보고 지은 이름)를 지나서 가다 보니 길 양옆으로 화려한 동상과 받침대와 기둥들이 있고 도로는 차도(마차가 지나는 길)와 인도(사람이 다니는 길)로 구분되어 있다.

인도는 모자이크로 길을 장식하고 있고 차도는 대리석을 깔았는데 수많은 마차들이 지나다녀서 대리석에 마차가 지나간 길이 새겨져있다.

당시 이 거리가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웠는지를 상상하게 해 준다.

 

 

 

 

 

 

테라스가 있는 집들은 (부유한 사람들이나 귀족들이 살던 집인 듯 함) 거리 왼쪽에 모여 있고 그 반대편에는 하드리안 신전과 스콜라스티카 목욕탕(로마는 목욕탕을 가는 곳마다 지었고 목욕탕 때문에 멸망을 했다고 한다.)이 있다. 목욕탕에는 온탕, 냉탕, 체육관(체력 단련실)으로 구분되어 있고 사우나 시설도 완비된 목욕탕이었다는 걸 유적을 보고 알 수 있었으며  코스모스처럼 생긴 기름나무로 목욕탕에 불을 지폈다고 한다.

그 아래쪽에는 수세식 공중화장실이 있는데 50여명이 동시에 볼일을 볼 수 있게 만들었는지 구멍이 50여개가 뚫려 있다.

공중화장실이 공중목욕탕보다 낮은 지대에 만들었는데 이는 공중목욕탕에서 쓰고 난 더운물이 공중 화장실로 흐르게 하여 뒤처리를 수세식으로 하게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수세식 화장실과 비데를 겸용한 화장실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공중목욕탕이나 공중 화장실이 모두 남성 위주로 만들어져 당시 여성들은 어디서 목욕을 하였고 어디서 볼일(?)을 봤는지 알 수가 없다.

화장실의 돌들이 모두 대리석이어서 겨울철이나 추운 날에는 돌들이 차갑기 때문에 미리 노예를 보내어 화장실에 걸터앉게 한 후 따듯해진 다음 주인이 볼일을 보게 했다고 한다.(급할 때는 어떻게 했는지.... 그럴 때는 노예를 미리 앉힐 수가 없었으니까....)

수세식 화장실은 오픈된 상태로 볼일을 보며 서로 정담을 나누고 정보를 나눌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화장실에 앉아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 도시에 공중목욕탕과 공중화장실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봐 에페소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호레테스 거리를 따라 내려가니 비잔틴 시대의 기념 분수와 팔각형의 무덤을 볼 수 있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가 없음) 하드리안 게이트는 행정구역 끝에 있었다.

그 아래로는 서민들이 살았던 동네와 큰 시장(아고라)으로 들어가는 주랑과 아름다운 셀수스 도서관이 잔해를 볼 수 있었다.  셀수스 도서관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셀수스 도서관에는 12,000여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하며 이곳은 세계 최고(最古)의 도서관으로 당시의 도서관 규모가 방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형극장으로 가는 길에 창녀들이 집터가 있는데 그 앞 길바닥 대리석판에 여자와 돈과 발자국이 하나 그려 있는데 여자와 돈은 여자를 만나려면 돈을 갖고 와야 한다는 것이고 발자국은 자기의 발을 대어보고 그 발보다 크면 여자를 살수 있다는 암시로 2,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광고판인 셈이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世界最古)의 광고판인 셈이다.

 

 

원형 극장엘 갔다. 당시 2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극장 중 하나라고 한다. 관람석은 피온산 쪽으로 만들어졌고 무대 연주석은 그리스 양식으로, 둥근 지붕을 가진 입구는 로마의 건축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극장 건설은 기원전 3세기에 시작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AD2세기 말에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에페소에서 해마다 열렸던 페스티벌은 이 극장에서 열렸으며 바울과 예수님이 제자들도 이곳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에페소 사람들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을 받고 많은 고초를 당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 극장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무대에 서서 동전 하나를 떨어뜨렸더니 동전소리가 객석 가장 뒤쪽에 까지 또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다. 당시의 건축술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어 감탄사가 절로 난다.

극장 너머로 원형 경기장이 있는데 200m 트랙에서 경주를 할 수 있게 만들었고 7만 명의 관중들이 함성 앞에서 검투사들은 목숨을 걸고 검투를 했던 곳인데 당시 검투사와 관객들이 함성과 절규가 들려오는 듯 했다.

 

 

 

원형극장 앞쪽에는 거대한 아고라(시장)가 있고 원형극장에서 항구까지는 530m나 되는데 항구로 이어지는 길 폭이 6차선이나 됨직한 길에 돌로 포장이 되어 있다. 이 길로 수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했을 것이고 예수님이 제자들도 이곳을 통하여 에페소로 오고 에페소를 떠났을 것이다.

당시 노예나 상인들이 짐을 지고 오가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착각에 빠져 본다.

에페소는 항구 도시로 수많은 나라의 상인들이 오고가던 국제도시로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왔기 때문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공중목욕탕도 생겨났을 것이고 공중 화장실도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출처 : 세계 최고(最古)의 도서관과 광고가 있는 도시 에페소
글쓴이 : 구쟁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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