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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방]

진주 촉석루 의암에서[2]

by 노란장미(아이다) 2018. 8. 16.

 

 
진주 촉석루 의암에서[2]


  

* 위치;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진주성내

 

* '진주 촉석루'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1983.07.20 지정)이다.

남강(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촉석루는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한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鄕試:初試)를 치르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 되었다.

6.25때 불탄 것을 시민들의 힘을 모아 진주 고적 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복원하였는데

건물은 팔작지붕에 다락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누각 밑의 돌기둥은 창원의 촉석산에서 채석하였고
목재는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왔으며 루에는 4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들의 시판이 걸려있다.

매년 가을 진주성에서는 '진주남강유등축제'가 개최되어 독특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Daum백과] 촉석루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 '진주 의암'

진주성 촉석루 아래 남강변 강가 수면 위로 솟아올라 있는 바위가 있다.

바위는 가로 3.65m, 세로 3.3m의 윗면이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서쪽 면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593년 6월 29일,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논개(論介)는 성을 점령한 일본군이 승리의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일본군 장수를 이곳으로 유인한 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이러한 논개의 순국정신을 현창하기 위해 영남사람들은 이 바위를 ‘의암’이라고 불렀다.

 

1629년 진주의 선비 정대륭은 바위의 서쪽 벽면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겼고,

남쪽에는 한몽삼이 역시 ‘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옆의 암벽에는 ‘한 줄기 긴 강이 띠를 두르고, 의열은 천 년의 세월을 흐르리라

[일대장강(一帶長江) 천추의열(千秋義烈)]’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논개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후처였는데, 최경회가 제2차 진주성 전투에 임할 때

성안에서 전투 뒷수발을 들었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남강에 투신하자,

논개는 일본 장수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유인해 끌어안고 함께 남강에 투신했다. 1739년 논개를 추모하는 사당 ‘의기사’가 세워지고,
논개는 ‘의기’로 추모받게 되었다. 의암 바로 위쪽으로는 의암사적비가 서 있다.

논개가 순절한 바위 의암은 2001년 9월 2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Daum백과] 의암 – 임진왜란의 흔적, 김현우, 한국학술정보




 

 








의암



의암에서

 

 


의암사적비각









 

 


 

 

 


 

 

 

 


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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