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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방]

[스크랩] 미술감상, 어떻게 할 것인가?

by 노란장미(아이다) 2006. 5. 22.

틴토레토 Jacopo Robusti Tintoretto의
 [은하수의 기원]The Origin of Milky Way

미술감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미술감상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감상이란 "마음에서 느껴 일어나는 생각"이다.
인간은 몸으로만 운동하지는 않는다. 마음으로도 한다.
몸운동이 몸을 튼튼하게 하듯, "마음운동"은 마음을 튼튼하게 한다.
마음운동의 대표적인 예가 예술감상이다.
예술감상은 여러 가지 느낌을 얻고 자연스레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 좋은 마음운동이다.
물론 우리는 자연도 즐겨 감상한다.
아니,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감상한다.
아름다운 저녁노을, 밤하늘의 은하수‥‥‥ .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맑고 풍요롭게한다.
예술은 자연의 창조력을 인간의 능력으로 재현한 것이다.
그만큼 자연에서 얻은 감동과 유사한 감동을 우리는 예술을 통해서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과 멀어질 수 없다면, 예술과도 멀어질 수 없다.

예술, 좀더 좁게는 미술을 감상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연을 감상하듯 감상하는 것이다.
자연을 감상할 때 우리는 경직된 의식으로 대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편안하게, 골치 아픈 일일랑 다 잊고, 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미술작품도 그렇게 대하는 것이 좋다.
미술을 잘 모른다고, 지식의 끈이 짧다고 지레 마음의 문을 닫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자연을 자연과학자처럼 잘 알아서 즐기는 것은 아니지않은가. 그렇게 편안하게 대하다 보면 미술은 어느덧 우리의 지근거리에서 가까운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미술작품은 자연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 재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미술작품에는 만든이의 의도와 느낌, 그 시대의 정신과 역사가 구체적으로 녹아 있다.
자연을 감상할 때와는 달리, 이와 같은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미술감상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술감상도 감상인 이상, 먼저 느낌부터 가지고 볼 일이다. 그리고 공부를 할 일이다.
이 두 가지가 상호 보완적으로 이뤄진다면 미술감상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정신적 풍요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

내가 주인이 되는 미술감상

여기 그림이 하나 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야코포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1518~1534)의 [은하수의 기원] 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한번 감상해 보자.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아,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구나!" 하고 느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우선 하늘과 옷감 등의 화사한 색채, 여인의 누드와 포동포동한 아기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형태의 조화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주제가 무엇인지 ,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아직 채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이 그림을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미술감상은 이렇듯 순간적인 시각적 판단에서 시작된다.
우선 눈으로 보기에 "좋다" 또는 "그렇지 않다"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사실 이렇게 눈으로 보아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이 미술감상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은하수의 기원]이 첫눈에 매우 화사하게 보이는 것은 우선 삼원색이 두루 쓰였기 때문이다. 붉은색의 옷감과 천, 짙푸른 하늘, 황금빛을 머금은 사람들의 몸뚱어리, 이 원색의 삼중주가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구도 면에서는 여인의 포즈가 하나의 대각선을 이루고, 아기를 들고 여인에게 다가가는 남자가 그와 엇갈리는 대각전을 만들어 그림 전체가 일종의 X자형 구도를 이룬 것이 눈길을 끈다.
X자형 구도는 안정감과 운동감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구도인 데다 여인을 중심으로 남자와 아기 천사들이 원을 이루어 구심력과 원심력이 공존함으로써 그 느낌을 배가해 준다.
이런 요소들로 보아 화가는 색채와 형태를 구사할 때 활력과 통제력을 동시에 잘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우리 눈이 그 사실을 금세 확인하고 부지불식간에 "아름답다"고 반응한 것이다.

그림의 이런 조형적 특질이 화가 개인에게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화가의 시대가 어떤 예술적 취향을 갖고 있었는지도 웬만큼 감지할 수 있다.
미술작품의 양식이나 조형적 특질은 이렇듯 우리에게 여러 가지 느낌과 정보를 전해준다.
그러므로 그림을 본다는 것은 먼저 그림의 조형적 특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시각적이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미술감상은 웬만큼 가능하다. 특별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하더라도 누구나 지금 당장 관람자로서 자유롭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말이다.
그림을 보는 이마다 좋다. 나쁘다. 아름답다, 그렇지 않다, 판단이 제각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감상하는 동안 미술은 나를 위해 존재하며, 나는 나의 본능에 따라 미술작품에 자유롭게 반응하고 즐길 능력과 자격이 있다.

미술작품은 물론 조형적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주제와 내용이라는 것이 있다. 그림의 주제와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알면 그림감상은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은하수의 기원] 역시 나름대로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은하수의 기원]은 제우스와 헤라 여신, 아기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알크메네라는 인간 여인에게 반한 제우스는 그녀와 동침하여 아들 헤라을레스를 낳았다. 이 일로 헤라 여신은 몹시 화가 났다. 헤라 여신은 어떻게 해서든 헤라클레스를 죽이려 했다.
그러자 알크메네는 온 가족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아기를 내다 버렸다.
아들을 홀로 굶어죽게 할 수 없었던 제우스는 버려진 아기를 안고 아내 헤라의 처소로 몰래 숨어들었다.
마침 헤라 여신은 자고 있었다. 간도 크다고나 해야 할까, 제우스는 헤라가 잠든 틈을 타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헤라의 젖을 물렸다. 아기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젖을 있는 힘껏 빨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아기는 젖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슴이 불편해진 헤라 여신이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다급해진 제우스가 강제로 아기를 떼어놓자 여신의 가슴에서 젖이 하늘로 분수같이 솟았다.
하늘에 점점이 박힌 젖은 곧 무수한 별들의 군집, 은하수가 됐다. 은하수가 "젖의 길[Milky Way]"로 불리게 된 사연이 여기에 있다. 땅에 떨어진 젖은 백합이 됐다.
이 그림에서는 백합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원작의 밑부분이 파손돼 보수할 때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원화의 전체가 아니라 부분인 셈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알고 그림을 본다면, 우리는 단순한 시각적 쾌감 못지않게 이야기가 자아내는 감동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상의 즐거움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렇듯 그림에 대해 많이 알수록 우리는 그림을 더욱 폭 넓게 이해하게 된다.

자, 그러면 그림의 조형적 특징과 주제 혹은 내용만 안다면,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는 것일까? 솔직히 무엇을 알고자 한다면 그 끝은 없는 법이다.
이 그림이 제작된 시대의 특징과 작품의 역사적 배경, 화가에 대한 정보. 즉 미술사적인 지식을 아는 것 역시 그림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그림은 1570년대에 신성로마제국의 루돌프 황제를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르네상스도 후기에 접어든 시대, 고전에 대한 농익은 이해가 자연스럽게 표출된 그림이다.
중세 기독교 시대가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 이후 고전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면서 화가들은 비로소 기독교뿐 아니라 그리스 · 로마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됐다.
신화적 소재를 통해 휴머니즘과 인간적 욕망을 자연스레 표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은하수의 기원]에서는 그 풍토에 이제 아주 익숙해져 여인 누드의 경우 매우 육감적이고 촉각적인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르네상스 초기나 전성기(全盛期)의 누드에 비해 훨씬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중세 때는 이런 에로틱한 누드를 공개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누드도 실은 오랜 인문주의적 투쟁의 성취물인 셈이다.
교회와의 싸움에서 이긴 인본주의의 강력한 예술적 무기인 것이다.

앙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선 틴토레토는 베네치아파에 속한 화가이다.
베네치아파는 빛과 색채를 잘 사용한 것으로 이름 높은 이탈리아의 화파로, 16~18세기 베네치아에서 활발히 활동한 화가들을 일컫는다.
해안도시인 베네치아는 햇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운하가 많아서 그 빛이 도시 곳곳에서 물결따라 반사된다.
한마디로 늘 빛의 제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은 빛과 색채에 민감할수밖에 없었고, 회화에서 이를 잘 구사하게 됐다.
반 에이크 형제의 유화 기법이 I6세기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를 통해 소개되면서 이 풍부한 빛은서양 어느 곳보다 이곳에서 밝고 화사하게 꽃피었다.
이런 사실은 벨리니(Jacopo Bellini: 1400~1470)를 필두로 하여 조르조네(Giorgione; 1477?~1510),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1588) 같은 대가들의 그림을 동시대의 다른지역 화가들과 비교해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
틴토레토의 그림이 왜 저리도 화사하고 강렬한지 쉽게 이해할수 있다는 말이다.

미술작품은 알면 알수록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
[은하수의 기원]에서 소략하게 시도해본 조형적 차원, 내용적 차원, 미술사적 차원의 접근 외에도 정신분석학적 차원, 사회학적 차원 등 다양한 차원으로 우리는 그림을 해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는 것(이 경우 지식으로서 아는 것)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생각지 못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많이 아는 것을 감상의 전부 혹은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함정말이다.
글머리에서 언급했듯이 감상은 알기 위한 것이기 전에 느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감상의 능력을 기르는 첩경은 무엇보다 그림을 많히 접하고 그만큼 많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그림과 관련된 지식을 배우고 알아가는 것은 이 같은 느낌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보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추상화를 잘 몰라서 감상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서양이나 동양의 고전회화도 추상화만큼 어려운 그림이다.
예컨대 [은하수의 기원]같은 그림에 대해서도 우리는 사실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특정한 신화를 주제로 한 것인지, 왜 그런 형식으로 표현됐는지는 설명을 듣거나 책을 통해 공부하지 않고서는 잘 알 수 없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상징과 알레고리를 동원해 표현한 그림도 오늘날에는 그 상징들이 거의 잊혀져 추상화를 해독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진다.
그나마 추상화보다 이런 고전회화가 편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림에 나타난 이미지가 사실적이어서 좀더 익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술감상의 진정한 출발점은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시각적 ·조형적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미술관이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또 교육 정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놓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미술작품을 그와 관련된 지식을 다 습득한 후에 감상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예술가나 미술 전문인들도 그런 지식을 다 갖추고 있지는 않다. 미술감상은 "지금 여기" , 내가 가진 것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진정한 내 느낌의 주인이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미술감상은 나를 진정한주체로 세우는 일이며, 그런 연후에야 우리의 감상력을 확대하려는 다양한 지적노력도 의미를 얻게 된다. 자신의 느낌대로 보는 것만 즐기고 그에 맞춰 공부하는것을 게을리한다면 안목의 깊이와 폭을 확장하는 데 곧 한계가 올 것이다. 미술작품을 보는 것이 익숙해지고 스스로 느낌의 주체가 됐다고 생각된다면, 그 다음에는 지적인 성취에 반드시 시간을 바칠 일이다. 이런 과정은 나선운동에 비유할 수 있다.

마음을 열고 주체적으로 느끼려는 태도가 중심을 이루고 그 중심을 따라 많이 보려는 노력과 지적 성취의 노력이 나선을 이루며 상승 · 발전하는 과정말이다.

출처 : 미술감상, 어떻게 할 것인가?
글쓴이 : christi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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